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와카미 겐신 (문단 편집) === 주니치 시절 === 데뷔 첫 해인 1998년에 선발진의 한 자리를 차지하며 14승 6패를 기록, 대학 시절부터의 라이벌이던 [[다카하시 요시노부]] 등과 치열한 신인왕 레이스를 펼친 끝에[* 신인왕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300 19홈런 75타점을 기록한 [[다카하시 요시노부]], [[한신 타이거즈]]의 츠보이 토모치카(.327 2홈런 21타점),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코바야시 칸에이(9승 6패 18세이브 2.87)등 그 해 좋은 활약을 펼친 신인들이 많아 이 선수들은 특별 표창을 받았다.] 센트럴리그 신인왕으로 선출되었다. 1999년 개막전 선발 투수로 기용되었으고, 팀이 센트럴리그 우승을 차지하는데 기여했다.([[일본시리즈]]에서는 [[다이에 호크스]]에게 패배). 2000년에는 2승 3패로 부진했으며, 2001년에는 6승 10패를 기록하며 프로 데뷔 첫 두 자릿수 패배를 기록하는 등 2년간 고전했다. 여담으로 2000년 당시 부진의 원인은 어깨나 팔꿈치가 아닌 [[난청]]으로 특이하다면 특이한 부상이력.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도 프로야구 경기장이 응원가나 나팔 소리로 워낙 시끄러운지라(100데시벨을 가볍게 넘는다) 이런 환경에 매일 출근해야 하니 선천적으로 귀가 약한 선수는 가끔 앓는 경우가 있다. 2002년은 12승 6패로 부활에 성공했고 [[노히트 노런]]도 한 차례 기록했다. 2003년에는 그러나 어깨 부상으로 시즌을 날리다시피 했고, 2004년에 개막전 투수로 유력시 되었으나 [[오치아이 히로미츠]] 감독이 개막전 투수로 [[가와사키 겐지로]]를 기용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같은 해 팀은 센트럴리그 우승과 함께 일본 시리즈에 진출했으나 [[세이부 라이온스]]에 왕좌 자리를내주고 만다. 17승 7패를 기록하며 리그 MVP와 [[사와무라상]] 등 총 9개의 타이틀을 획득했다. 2005년은 2년만의 개막전 투수를 맡았다. 5월 20일 대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교류전]] 원정경기에서 8회까지 퍼펙트 행진을 이어갔으나 [[이승엽]]에게 홈런을 맞고 [[퍼펙트 게임]]이 무산되었다. 그 경기에서는 무사사구 완투승에 그쳤다. 2006년에도 롯데와의 교류전에서 퍼펙트 게임과 노히트 노런 찬스를 연달아 날리며 1안타 2볼넷 완봉승을 거두었다. 같은 해 [[NPB]] 역사 상 120번째 1 군 공식 경기 통산 1,000 탈삼진의 금자탑을 쌓았다. 시즌동안 17승을 거두며 자신의 두 번째 최다승 타이틀 그리고 자신의 첫 최다 탈삼진 타이틀을 차지했다. 팀은 [[2006년 일본시리즈]]에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 맞붙어 1승 4패로 우승 페넌트를 내주었다. 2007년에는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와의 경기에서 NPB 역사상 124 번째(팀 사상 9 번째)의 1군 공식전 통산 100 승에 도달했다. 2006년과 같은 매치업으로 [[2007년 일본시리즈]]에서 리벤지 매치가 성사되었고, 작년과 같이 4승 1패를 거두며 팀은 53년만에 [[일본시리즈]] 정상에 오르는 감격을 누렸다.[* 당시 [[이병규(1974)|이병규]]가 팀 동료로 활약했다.] 다만 본인은 전해 [[다르빗슈]]처럼 혼자 패전투수가 되었다. 공교롭게도 전해 주니치의 유일한 승리투수가 카와카미이고 닛폰햄의 유일한 패전투수가 [[다르빗슈]]였는데, 1년후에는 주니치의 유일한 패전투수 카와카미에 닛폰햄의 유일한 승리투수 다르빗슈라는 완전히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시즌 후에는 (올림픽 지역예선을 겸해서 열린)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해서 일본의 올림픽티켓 획득에 기여하기도 한다.[* 한국전에 불펜으로 등판해서 팀 승리에 숨은 공신이 된다.][* 본 대회에 걸린 올림픽티켓은 단 1장이었고, 결국 한국과 대만은 2008년 3월 대륙별 최종예선으로 밀려난다.] 2008년에는 부진을 기록하며 잠시 중간계투 요원으로 전환하기도 했으나 이내 선발로 복귀했고 [[2008 베이징 올림픽/야구|베이징 올림픽]]에 일본대표팀으로 출전했으나 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 특히 미국과의 동메달결정전에 불펜으로 등판했으나 부진한 투구를 보였다.] 시즌 종료 후에는 에이전트 계약을 체결하고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했다. 데뷔 후 10년간 신인왕, 최우수 투수 2회, 사와무라상 1회, MVP 1회, 다승왕 2회, 탈삼진왕 1회, 올스타 6회 출장 및 올스타 MVP 1회, 베스트나인 2회, 국가대표 1회(08베이징), 일본시리즈 감투상 1회 등 각종 상을 휩쓸며 통산 100승, 1000탈삼진, 1500이닝, 1회의 노히터, 리그 우승 3회와 팀 기록으로는 일본시리즈 우승반지까지 하나 차지하며 그야말로 투수로서 누릴 수 있는 영광은 다 누리고 10년간 주니치의 에이스로서 팀의 든든한 기둥으로 활약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